죽음을 통해 비로서 행복이 무엇인가를 조금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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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gapcha@hanmail.net

윤공덕지 님의 안내를 받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살아 있는 의식으로 죽음을 체험한다면 정작 죽음이 다가왔을 때 편안하지 않을까.
체험 후 과연 나의 몸이나 정신세계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매우 궁금했습니다.

1박 2일의 과정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죽음이란 현실 앞에서
내가 지은 인연 속의 사람들을 버려야 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도 붙들지 말자,
죽음까지 동행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수의를 입고 캄캄한 관 속에 누워보니 하나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늘 외로워서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의식에 갇혔었는데,
앞으로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기대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낼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담대한 의식이 생겼습니다.
새롭게 탄생되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가슴에서 들끓는 분노와 원망을 심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네들까지도 놓아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체험이었습니다.
세상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혜안을 가지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좋을 것도 싫을 것도 그 무엇도 내 것이 아님을 알게되었습니다.

속세의 나이를 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자식을 낳을 때 0살이듯이 지금 나는 0살로 돌아갈 것입니다.
0살의 천진무구한 세계에서 천진한 눈으로 세상을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수련원을 내려가며 이 한 생각들을 망각하지 않도록 애쓸 것입니다.

죽음을 통과하고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내게 불쑥 안긴 장미는 산뜻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꽃 같은 마음을 전달하라는 당부 같았습니다.
부처님 전에 무릎 꿇고 빌었습니다.
제발 세상 것으로부터 자신을 묶지 말고 훨훨 자유인으로 숨을 쉴 수 있기를.

난생 처음으로 108배를 올리고 밤 하늘을 올려봤습니다.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이 당장 내 앞에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별빛이 저리 밝은 줄을 속세에선 감히 상상이 안 되었으니까요.
알 수 없는 희열이 가슴에 가득했습니다.

죽음을 통해 비로서 행복이 무엇인가를 조금 알았습니다.
살아서 숨 쉬는 동안에 어떤, 무슨 마음 가짐으로 생을 살아야
다음 세상에 어떤, 무엇으로 태어날 것인가가 분명해졌습니다.

아들 딸들 짝지어 타국으로 내 보내고 삶이 허망하던 차에
하루 하루 숨 쉬는 것조차 막연하던 차에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이번 임종체험은 정작 나의 죽음을 준비하라는 계시였습니다.
사는 날까지 잘 살아 내야 할 것입니다.
나와 인연 지은 모든 사람과 사물의 애착을, 고리를 하나씩 접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유체이탈 하는 순간 앞에서도
의연하게 평화롭게 마지막을 거둘 것을 자신과 약속할 것입니다.

임종 53기 동기들을 떠올리면 삶이 또한 새로울 것이라 생각됩니다.
죽음을 동행하고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난 '오삼 임사 법우'들이여!
우린 서로 헤어졌지만 어쩌면 영원을 함께 살아갈 특별한 법우들 아닐까요.

끝으로 윤공덕지 님 감사합니다.
저를 기억하지 않고 그냥 흘려버렸다면 이런 체험을 할 수나 있었겠어요.
언제라도 연락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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